집에 돌아가는 길에 까마귀 무리가 제 집 마당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있던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한 마리는 봉지를 부리로 찢고, 다른 한 마리는 안에서 빵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저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제 앞에서 태연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 까마귀는 정말 똑똑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동물의 지능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조사해보니 지능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까마귀는 정말 새대가리일까
우리말에 '새대가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머리가 나쁘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실제로 조류의 뇌 구조를 살펴보면 포유류처럼 대뇌 신피질(cerebral neocortex)에 주름이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뇌 신피질이란 고차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겉껍질 부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조류는 지능이 낮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까마귀의 경우 뇌 크기는 작지만 뉴런 밀도(neuron density)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출처: 미국국립과학원회보](https://www.pnas.org)). 뉴런 밀도란 단위 부피당 신경세포가 얼마나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즉, 뇌 크기가 작아도 정보 처리 능력은 포유류 수준으로 뛰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목격했던 까마귀들의 행동도 이런 뉴런 밀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결되는 퍼즐을 풀며, 심지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단순히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거울 테스트(mirror test)에서 까치가 통과했다는 사실입니다. 거울 테스트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기 자신임을 인식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으로, 자아 인식 능력을 측정하는 대표적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이 테스트를 통과한 동물은 일부 영장류, 코끼리, 돌고래, 그리고 까치 정도입니다. 조류 중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다만 거울 테스트가 완벽한 지능 측정 방법은 아닙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닭도 특정 방식으로 테스트하면 자기 인식 능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닭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동료들에게 경고음을 내는데, 거울을 보고 있을 때는 경고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 모습이 다른 개체가 아니라 자신임을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지능 측정은 실험 설계 방식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은하수를 보는 쇠똥구리, 분산형 뇌를 가진 문어
쇠똥구리는 밤에 똥을 굴리면서 길을 찾아갈 때 은하수를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커런트바이올로지](https://www.cell.com/current-biology)). 연구진은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 안에 쇠똥구리를 놓고 실험했습니다. 플라네타리움이란 천체투영관으로, 실내에서 인공적으로 밤하늘을 재현하는 시설입니다. 실험 결과, 쇠똥구리는 은하수가 있는 밤하늘에서만 정확하게 길을 찾았습니다. 달빛이나 개별 별만으로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이는 곤충이 천체를 이용한 항법 시스템(celestial navigation)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천체 항법이란 별이나 은하수 같은 천체의 위치를 기준으로 방향을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솔직히 이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는 곤충이 이 정도로 정밀한 공간 인지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문어는 또 다른 차원의 지능을 보여줍니다. 무척추동물 중 최고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로 학습, 병 열기, 개체별 성격 차이까지 보입니다. 하지만 문어의 진짜 특이점은 신경계 구조입니다. 문어의 신경세포는 중앙 뇌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특히 전체 뉴런의 절반 이상이 촉수(팔)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를 분산형 신경 시스템(distributed nervous system)이라고 부르는데, 중앙집중형 뇌를 가진 포유류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각 팔이 독립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만약 문어의 왼쪽 두 번째 팔과 오른쪽 팔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문어가 떠올리는 의식의 형태는 인간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문어는 팔이 시야에 보이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각 팔이 촉각 정보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먹이를 탐색합니다. 현대 인공지능의 분산 컴퓨팅 구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문어는 사회성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 살고, 세대 간 지식 전달도 없습니다. 아무리 개체 지능이 뛰어나도 기술 축적이나 문명 발전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건 개인 지능보다는 집단 협력과 지식 축적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문어의 한계가 분명히 보입니다. 동물의 지능을 판단하는 가장 고차원적 기준으로는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개체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마음 속에 자신과 다른 믿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를 테스트하는 방법 중 하나가 '거짓 믿음 테스트(false belief test)'입니다. 현재까지 이 테스트를 통과한 동물은 일부 영장류뿐이며, 까마귀나 문어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장 똑똑한 동물'은 기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도구 사용과 문제 해결: 까마귀, 침팬지
- 자아 인식: 코끼리, 돌고래, 일부 조류
- 공간 항법: 쇠똥구리
- 분산형 신경 처리: 문어
- 사회적 지능과 마음의 이론: 인간, 일부 영장류
저는 마당에서 빵을 꺼내던 까마귀를 본 이후로 동물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능은 단일한 척도로 측정할 수 없고, 각 동물은 자신의 생존 환경에 최적화된 형태의 지능을 발달시켰습니다. 인간 중심의 기준으로만 지능을 판단하는 건 오만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정교한 실험 설계와 관찰이 이루어진다면, 지금까지 과소평가되었던 동물들의 지능이 속속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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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0dbtA8X0Xs&list=PLYeXRzoBwGeHVguBktW327fxb1tKqLXrR&index=138